2014년 5월 9일 금요일

디 고든을 통해서 본 'MLB 100도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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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시즌 100도루 클럽 8번째 멤버에 도전하는 LA 다저스의 디 고든. 사진│LA 다저스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발 빠르고 투수들이 던진 공을 방망이 중심에 맞추는 센스가 뛰어난 선수들은 대개 1, 2번 타순에 배치된다. 경기 초반, 상대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 다음 베이스까지 가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발 빠른 선수의 존재는 안타 하나 없이도 1득점이 가능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게 만든다. 가령 선두 타자가 볼넷으로 1루를 걸어나간 다음, 도루로 2루를 밟은 이후 2번 타자의 희생 번트로 1사 3루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뒤이어 등장한 3번 타자는 외야 플라이나 1-2간 깊숙한 땅볼로 3루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다. 안타 하나 없이 선취점을 내어 준 투수는 홈런으로 실점했을 때보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발 빠른 선수를 평가하는 척도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출루율'을 바탕으로 호타 준족 유무를 가려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루 숫자'만큼 발 빠른 선수를 평가하는 척도는 없을 듯하다. 실패했을 경우 위험도 크지만, 성공했을 때 벤치에서 작전을 다양하게 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린 라이트 사인'은 분명 필요하다. 그래서 한 시즌에 보통 10개 정도의 도루를 하는 선수는 '괜찮은 주루 능력을 갖췄다.'라고 평가하며, 그 숫자가 20개를 넘길 경우 '빠른 발을 갖췄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물며 30개 이상의 도루를 하는 선수는 상대 투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굳이 도루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루상에 출루하는 것만으로도 투수들이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을 못 하기 때문이다. 

세 자릿수 도루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추억'
그런 점에 있어서 아직 시즌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를 쏜살같이 누비는 한 선수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LA 다저스의 내야수, 디 고든(24)이 그 주인공이다. 고든은 8일(한국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원정경기에서 시즌 20호 도루에 성공하며 이 부문 리그 단독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웬만한 준족도 한 시즌 달성하기 힘들다는 20도루 고지를 고든은 단 32경기 만에 달성한 셈이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시즌 90도루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고든을 '도루만 잘하는 선수'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빠른 발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내야 안타를 잘 만들어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그는 지난해 0.234에 머물렀던 타율을 0.341로 끌어올렸다. 메이저리그 입성 이후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도루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구원 투수로 이름났던 아버지(톰 고든)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점도 자못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쯤 되면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대도(大盜)' 리키 헨더슨을 떠올리게 된다. 1979년 데뷔 이후 단일 시즌 100도루 이상을 무려 세 번이나 기록했던 헨더슨은 1980년부터 86년까지 7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도루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주인공이었다. 이후에도 다섯 번이나 도루왕에 올랐던 그는 44세의 나이로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1,406 도루를 기록하면서 이 부문 역대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그는 현대 야구에서 기록하기 어렵다는 '커리어 통산 4할 출루율'도 기록하면서 최고의 리드오프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물론 헨더슨이 메이저리그 100도루 시대를 연 것은 아니었다. 1887년,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에 소속된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즈'의 휴 니콜은 125경기에서 무려 138개의 도루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슷한 시기에 캔자스시티 카우보이즈에서 활약했던 빌리 해밀턴도 111개의 도루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이 중 해밀턴은 네셔널리그 이적 후에도 꾸준히 100도루를 기록하는 등 무려 다섯 번이나 도루왕 타이틀을 거머쥔 바 있다. 그가 다섯 번의 도루왕을 차지하는 동안 시즌 평균 도루 숫자는 무려 104개에 달했다. 

해밀턴 이후 세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는 이가 탄생될 때까지는 무려 67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1962년 당시 LA 다저스에서 활약했던 모리 윌리스가 그 주인공. 1960년부터 6년 연속 네셔널리그 도루왕을 차지한 모리스는 1962년에 104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단일 시즌 100도루 이상 기록한 선수'중 하나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됐지만, 명예의 전당에는 오르지 못했다. 모리스 이후에는 그 유명한 '루 브룩'이 1974년에 118도루를 기록하면서 도루왕에 오른 바 있다. 개인 통산 3,000안타 기록까지 세운 브룩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도 당연한 순서였다. 

이후 리키 헨더슨과 더불어 내셔널리그에는 '빈스 콜맨'이 나타나 다시금 100도루 시대를 열었다. 1985년을 시작으로 3년 연속 100도루를 기록한 콜맨은 이후 3년간 다시 60도루 이상을 기록하며 '6년 연속 도루왕' 기록을 거머쥐기도 했다. 첫 해 110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왕에 오르기도 했지만, 기대와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자로서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콜맨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는 100도루 이상 기록한 이가 나오지 않았다. 

도루가 정식 기록으로 인정된 이후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시절을 포함하여 지난해까지 100도루를 한 번이라도 기록한 이는 총 7명에 불과했다. 야구팬들이 다저스의 고든을 주목하는 것도 그가 100번째 도루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콜맨 이후 27년 만에 세 자릿수 도루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자못 흥미로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역사상 단 7명밖에 없다는 '100도루 클럽'의 8번째 멤버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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