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킬러, 조 존슨의 M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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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듣보' 조 존슨은 7차례나 올스타에 뽑힌 슈퍼스타다(사진 제공 = Jumpman2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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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편집부 = 조 존슨(브루클린 네츠)만큼 조용한 올스타가 또 있을까? 뛰어난 개인기와 득점력을 지닌 그는 국가대표와 올스타, 그리고 팀 내 최고연봉선수로 손색없는 활약을 펼쳐왔다.
그렇다고 덜 화려한 것도 아니다. 특유의 현란한 볼 핸들링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승부처에서는 결정타를 날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 현지에서조차 이름 표기를 엉뚱하게 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사일런트 킬러(Silent Killer)'라는 별명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한국에선 '조듣보(듣도 보도 못한)'라는 씁쓸한 닉네임으로 불리우고 있다. 심지어 개그 소재로 적극 활용(?)되기도 한다.
매력은 차고 넘친다
소속팀 브루클린 네츠는 마이애미 히트와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출발은 다소 더뎠지만 2014년 들어 동부 컨퍼런스에서 승률 3위를 찍으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선 3번 시드 토론토 랩터스를 꺾으며 업셋에 성공했다.
소속팀 브루클린 네츠는 마이애미 히트와 2014 플레이오프 2라운드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출발은 다소 더뎠지만 2014년 들어 동부 컨퍼런스에서 승률 3위를 찍으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선 3번 시드 토론토 랩터스를 꺾으며 업셋에 성공했다.
선수 면면만 보면 브루클린은 어디에 내놔도 밀릴 것이 없는 팀이다. 그 중심에 조 존슨이 있다. 1981년생인 존슨은 아칸사 출신으로 리틀락 센트럴 고교를 거쳐 아칸사 대학을 나왔다. 대학시절부터 그는 일찌감치 특출한 재능을 엿보였다.
1학년 때 평균 16.0점, 5.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양 부문 모두 팀 내 1위(학교 역사상 최초)에 올랐고 팀을 NCAA 토너먼트 16강까지 이끌면서 주가를 높였다.
마음만 먹었다면 듀크나 코네티컷 같은 강팀에서 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칸사 토박이인 만큼,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레이저백스(아칸사 대학 팀명)에서 뛰길 원했고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무서운 신인, 무서운 득점기계가 되다
존슨은 2001년 드래프트 전체 10순위로 보스턴 셀틱스의 지명을 받았다. 셀틱스 유니폼을 입고 나선 그는 워싱턴 위저즈를 맞아 적극적인 수비로 마이클 조던의 볼을 빼앗는 등 경기 내내 '농구황제'를 괴롭혔다.
존슨은 2001년 드래프트 전체 10순위로 보스턴 셀틱스의 지명을 받았다. 셀틱스 유니폼을 입고 나선 그는 워싱턴 위저즈를 맞아 적극적인 수비로 마이클 조던의 볼을 빼앗는 등 경기 내내 '농구황제'를 괴롭혔다.
시즌 첫 38경기 중 33경기를 주전으로 출전하면서 폴 피어스와 함께 보스턴의 미래로 자리를 잡는 듯 했다. 그러나 존슨과 'GREEN'의 인연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2년 트레이드 마감일. 셀틱스는 밀트 팰리시오와 존슨을 묶어 피닉스 선즈로 내보냈다. 그 대가로 받아온 선수는 로드니 로저스, 토니 델크. 존슨이 지닌 잠재력을 감안했을 때 다소 아쉬운 트레이드였다.
존슨은 피닉스에서 날개를 달았다. 점차 비중을 키워가던 그는 스티브 내쉬를 만나면서 기량을 꽃피웠다. 아니, 마이크 댄토니 감독을 만난 뒤라고 해야 할까? 댄토니는 존슨의 뛰어난 득점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했다. 2003-04시즌, 기량발전상(MIP) 투표 3위에 올랐던 존슨은 적극적인 속공 가담과 정확한 외곽슛 능력을 뽐내며 피닉스 런-앤-건의 주역으로 올라섰다.
그 시즌 피닉스는 정규리그 MVP(스티브 내쉬)를 배출하는 등 우승 후보로 급부상했다. 존슨의 공헌이 컸다. 특히 다재다능함이 돋보였는데 수비가 약한 내쉬를 위해 빠른 가드를 맡는가 하면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득점기계들도 잘 막아냈다. 그러면서 82경기를 모두 나서는 강철체력도 함께 과시했다.
이러한 원동력으로 존슨은 농구에 대한 열정, 우상을 향한 존경심을 들었다. "농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농구에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온 열정을 다해 수비한다"고 했는데 그러한 마인드는 1990년대를 빛낸 명가드, 게리 페이튼에게 배운 것이었다. "페이튼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NBA 스타였다." 존슨의 말이다.
2005년 플레이오프 도중 존슨은 광대뼈를 크게 다쳤다. 마스크를 쓴 채 뛸 수밖에 없는 큰 부상이었다. 사실, 안면보호대 역할을 하는 마스크는 선수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피닉스처럼 빨리 달리는 팀에서는 특히나 더 고생스럽다. 존슨에게나 팀에게나 최악의 상황이었다.
존슨은 쉴 생각이 없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컨퍼런스 결승 4차전에서 41분간 26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활약하면서 팀의 승리(111-106)를 이끄는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무서운 조직력으로 달려드는 샌안토니오의 높은 벽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피닉스와 함께 한 그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시리즈였다.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존슨은 조력자보다는 자신이 직접 에이스로 나서 우승에 도전하길 원했다. 결국 그는 새로운 행선지를 찾아 나선다.
미국 국가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던 조 존슨. 지난 2006년, 한국을 찾은 바 있다(사진 제공 = 조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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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의 새로운 중심
2005-06시즌을 앞두고 빅딜이 터졌다. 피닉스가 애틀랜타의 제안(7,000만 달러)을 매치하지 않음에 따라 2005년 8월 19일, 존슨은 보리스 디아우, 1라운드 지명권 2장과 함께 사인-앤-트레이드로 호크스 유니폼을 입었다.
2005-06시즌을 앞두고 빅딜이 터졌다. 피닉스가 애틀랜타의 제안(7,000만 달러)을 매치하지 않음에 따라 2005년 8월 19일, 존슨은 보리스 디아우, 1라운드 지명권 2장과 함께 사인-앤-트레이드로 호크스 유니폼을 입었다.
빌리 나이트 당시 호크스 단장은 "존슨은 애틀랜타 프랜차이즈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선수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역량을 지녔다.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력도 갖췄다. 조쉬 칠드레스, 조쉬 스미스, 알 해링턴, 마빈 윌리엄스 등과 멋진 조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며 반색했다.
전문가들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바로 이전 시즌, 존슨은 피닉스의 62승을 이끄는 동안 팀 내 최장출전시간(39.5분), 276경기 연속 출전, 커리어 하이 득점(17.1점), 프랜차이즈 기록(3점슛 47.8%) 등을 세우며 생애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바 있다.
다만 직접 전면에 나서 팀을 이끈 경험은 없었다. 우려의 시선이 따른 이유다. 실제로 존슨은 애틀랜타의 젊은 분위기에 적응하고 팀의 중심에 서는데 꽤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팀 성적도 나지 않았던 터라 부담은 더 컸다. 2005-06시즌, 애틀랜타는 겨우 26승에 그쳤다.
생애 처음으로 평균 20득점을 넘겼지만 존슨은 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적잖이 느껴야 했다.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 힘들긴 하지만 즐기고 있다." 2005-06시즌 당시 존슨이 했던 말이다.
플레이오프 팀이 되다
다들 찰스 바클리를 ‘농구계의 펠레’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고 모든 예상이 다 빗나갔던 것은 아니다. 바클리는 존슨 이적 당시 "애틀랜타가 2년 뒤에는 플레이오프에 오를 것"이라며 호크스의 성적을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플레이오프 팀이 되다
다들 찰스 바클리를 ‘농구계의 펠레’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고 모든 예상이 다 빗나갔던 것은 아니다. 바클리는 존슨 이적 당시 "애틀랜타가 2년 뒤에는 플레이오프에 오를 것"이라며 호크스의 성적을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이는 정확히 적중했다. 2005-06시즌 26승, 2006-07시즌에 30승에 그쳤던 그들은 2008-09시즌, 47승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조 존슨과 알 호포드, 조쉬 스미스로 이어지는 핵심을 구축한 호크스는 다시 한 번 동부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199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관중도 늘었다. 지난 2000년, 홈구장을 필립스 아레나로 옮긴 후 처음으로 12차례 매진사례를 이뤘다. 존슨도 신바람을 냈다. 동료들의 성장 덕분에 해결사 역할에 치중할 수 있게 됐다. 2008-09시즌, 존슨의 4쿼터 평균 득점은 코비, 드웨인 웨이드, 르브론 제임스 등에 이어 NBA 전체 6위였다.
존슨은 "62승을 거둔 팀에 있다가 계속 지기만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동료들을 믿었다. 이적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팀을 옮겼을 것이다. 호크스는 성장하고 있다."
개인적인 영예도 뒤따랐다. 존슨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연속 NBA 올스타에 뽑혔다. 지난 2006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 대표팀에 승선하며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쏘니,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폴 등과 국제무대에 나서기도 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라
존슨의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다. 애틀랜타도 마찬가지. 그러나 아직 이들은 정규시즌의 저력을 플레이오프까지는 잇지 못하고 있다. 존슨의 과제이기도 하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라
존슨의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다. 애틀랜타도 마찬가지. 그러나 아직 이들은 정규시즌의 저력을 플레이오프까지는 잇지 못하고 있다. 존슨의 과제이기도 하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팀을 올려놓아야 하는데 도리어 명성에 걸맞지 않는 부진으로 팬들의 원성을 샀다. 아니,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기보다 기대 이하였다. 플레이오프의 무기력한 패배 뒤에 “태업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마저 이어졌으니 말이다.
존슨은 2010년 7월 4일, 애틀랜타와 6년, 1억 1,900만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체결하면서 영원한 호크스맨으로 남게 될 기회를 맞았다. 구단은 그가 2005년 합류 후 보인 헌신과 성실함을 믿었다.
하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2011년 플레이오프 내내 무기력함으로 일관하며 '과연 리더가 맞긴 하냐'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존슨도 부정적인 여론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2011-12시즌을 앞두고 "이제는 코너를 돌아갈 차례"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말인 즉, 한 단계 더 올라서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애틀랜타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2012년 7월 11일, 애틀랜타는 조던 파머, 앤써니 모로우, 요한 페트로 등을 받는 대가로 존슨을 브루클린 네츠로 트레이드했다. 7년 간 이어진 호크스와의 인연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브루클린 이적 이후, 개인 기록은 상당 부문 감소했다. 데런 윌리엄스, 피어스, 브룩 로페즈 등과 함께 뛴 이유도 있지만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몸놀림이 둔화된 것도 컸다. 2013 플레이오프에선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네츠 팬들의 질타를 한 몸에 받아야 했다.
하지만 올 시즌 반등에 성공했다. 고작 3경기만 쉬었고 전 시즌 대비 야투 성공률을 3% 이상 끌어 올렸다. 40%가 넘는 3점슛 성공률은 2004-05시즌 이후 겨우 두 번째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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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해결사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조 존슨의 지난 2시즌 클러치 기록(자료 제공 = NBA 게임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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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승부처에서 힘을 냈다. 지난 2년 간 1분 이내, 3점 차 이하 상황에서 무려 16번이나 동점 혹은 역전슛을 만들어냈다. 이 클러치 상황에서 기록한 야투 성공/시도 개수는 무려 15/19.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봄 농구'에도 강하다. 8경기를 치른 현재, 2014 플레이오프 평균 21.3점, 3.6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53.3%, 3점슛 성공률 41.4%를 기록 중이다. 특히 1라운드 상대였던 토론토를 맞아 무시무시한 포스트-업 생산력을 선보이며 업셋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히트와의 세미 컨퍼런스 파이널 1차전에서도 팀 내 최다 득점을 쌓았다.
존슨은 실력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고 실력이 떨어지거나 화려하지 않은 선수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용히 명성을 쌓아가고 있을 뿐이다. '조듣보', 조 존슨의 향후 활약이 더욱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PROFILE
포지션 슈팅가드
생년월일 1981년 6월 29일
출생지 아칸사 리틀락
대학 아칸사 대학
신장/체중 201cm/109kg
드래프트 2001년 전체 10순위
소속팀 보스턴 셀틱스(2001~2002)
피닉스 선즈(2002~2005)
애틀랜타 호크스(2005~2012)
브루클린 네츠(2012~현재)
주요경력 NBA 올스타(7회)
NBA 서드 팀(2010)
1개의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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